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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의 만리풍취]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유시민의 진실과 김대중 내란음모의 실체
2019.05.30
의원실 | 조회 245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1980년 당시 진술서를 잘 써서 비밀조직을 지켰다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주장에 대해 “1980년 5~7월까지 아무도 몰라 안 물어본 것을 자기가 잘 지켜서 안 들킨 거라고 거짓말한다”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이날 오후 시사포커스TV ‘정연태의 만리풍취’에 출연해 “각 서클이 7~8개 있었는데 그 서클의 대표자들이 몰래 만난 게 비밀조직이고 사실상 서울대 학생운동 컨트롤타워로 저도 그 멤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수십 명의 학생들이 잡혀 와서 수사당국이 알고 있었으면 물어봤을 텐데 아무것도 몰라 못 물어본 것”이라며 1980년 12월에야 서울대 학생 100여명이 연행됐던 무림(霧林) 사건까지 예로 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심 의원은 “6월 4일 1차 수배가 있었고 6월 12일 유시민 진술서에 77명이 나온 뒤 6월 17일자로 18명이 수배가 내려졌다. 누가 언제 무엇을 했다는 내용이 있어야 지명 수배할 수 있는데 유시민이 소상히 얘기하니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후 유시민은 아무 혐의도 없이 풀려났고 저는 징역 5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에서 흔히 이용되는 거짓말로 유시민이 하얀색 수의 입은 사진이 있는데, 1984년에 민간인 때린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징역 1년 살 때 모습이지 1980년이 아니다. 80년에는 감옥도 안 가고 풀려난 것”이라며 “84년에 항소하면서 항소 이유서를 썼는데 이걸 또 80년에 쓴 거라고 거짓말하는 정치평론가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뿐 아니라 심 의원은 “유시민 씨는 심재철이 먼저 잡혔고 본인은 거기에 꿰어 맞춰져서 7월 중순에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는 유 씨가 6월 12일 작성하고 심재철은 6월 30일 잡혔다”고 꼬집은 데 이어 “이해찬 씨도 김대중 정권인 98년 신동아 6월호에 심재철이 먼저 잡혀서 거짓말하는 통에 자기가 거기 꿰어 맞춰져가지고 고문당했다고 했는데 이것도 거짓말로, 이해찬은 6월24일, 심재철은 6월30일 체포된 게 팩트지만 그 당시 이씨가 국회의원이라 그 말이 맞는 것처럼 퍼졌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서울역 회군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자기가 진군하자고 했는데 심재철이 해산하자고 했다고 주장하나 100% 거짓말이다. 유씨는 중립적이었다고 본인 스스로 얘기했고 ‘해산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진술서에도 나온다”며 “어떤 거짓말을 해놓고 이걸 뒤집으면 매장되니까 계속 합리화시키다가 신념이 되어버리고 스스로 최면에 걸리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심 의원은 유시민 진술서 내용과 관련해 “유씨가 창작이라고 말해도 99%는 사실이고 1%만 거짓말”이라며 “심재철이랑 80년 3월에 처음 알게 됐다고 수사당국에 주장했는데 실제는 유시민이 대학교 1학년 들어오자마자 서클활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78년 3월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른바 ‘서울역 회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선 “정권 탈취란 목표로 가던 게 아니라 비상계엄령 해지하라 등 민주화 요구한 것이기에 회군이 아니라 서울역 해산”이라며 “당시 잠실과 효창동에 공수부대들이 출동대기 상태로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밤에 만일 유혈사태가 터졌더라면 큰 충돌이 일어날 수 있어 그때 학생회장들이 해산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심 의원은 계속 진격하지 않고 서울역에서 시위대를 해산해버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통령까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서울역 시위와 광주민주화운동은 전혀 상관이 없다. 뒤집어씌우기 위한 낙인찍기 수법”이라며 “단지 김대중이 잡혔다는 소식이 굉장히 충격이었고 그게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데 영향을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이 발설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판결까지 받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형선고는 저하고 상관없이 반국가단체인 일본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의장이어서 나온 것으로 만일 내란음모였으면 기껏해야 징역 20년이 최고형”이라며 “서울에서의 대학생 시위를 (김대중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한 것이고 한민통 혐의를 입증해준 게 바로 이희호 여사와 최측근 의원 3명”이라고 응수했다.

 

심지어 심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사조직을 운용하기 위해 거금을 들였다고도 밝혔는데, “지금부터 39년 전에 2억 원이 넘는 돈이면 어마어마했다.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이란 사람이 김대중 씨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고 사조직에 전남지부장, 광주지부장 이렇게 해가지고 작업해 나간 것이 분명히 있긴 있었다”며 “집권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던 김대중 씨로선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 들어가 봐야 별로 남는 게 없다 판단해 대신 국민연합, 한국민주주의연구소 같은 여러 사조직을 순식간에 만들고 집권계획을 준비해나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왜 40년 가까이 된 이제야 반박하고 나섰느냐는 질문에 “80년에 쓴 내 진술서는 88년 5공 청문회 때 비로소 볼 수 있었고, 유시민 진술서는 95년 전두환 내란음모 고발 때에야 볼 수 있었는데 80년 당시 피고인 24명 중 다른 사람들이 뭐라 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입을 못 열었다”며 “근래에 들어서 옛날 사건들을 전부 다 확인할 수 있었고 최근 유시민이 KBS 연예프로그램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뒤집어 ‘저건 아니다’ 생각해 시작한 것” 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심 의원은 1980년 당시 서울대학교 4학년으로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었고 3학년인 유 이사장은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는데, 5월 15일 소위 ‘서울역 해산’ 이후 17일 24일부로 비상계엄령이 전국 확대 실시되고 수많은 운동권 인사들도 구금되면서 이 과정에서 먼저 잡혔었던 유 이사장은 자신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진술서는 창작이었으며 밀고한 적 없다는 주장을 지난달 20일 KBS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주장했다가 22일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선 안 된다”는 심 의원의 지적으로 양자 간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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